
冥導: 技華樓
붉은 달이 겹쳐오니, 월식이 일어나겠구나.
보아라, 들리느냐. 명도가 열릴 것이다. 어둠이 인도하겠구나.
어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라, 문을 열고 금빛 휘장 드리우고 너울 쓰고 분바르자.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자꾸나.
[第 0 장. 명도의 축제]
"붉은 달이 떴어, 오이란."
"...."
"이번 축제는 다를 지도 몰라."
오이란은 대답이 없었다. 대개 오이란은 아무 말도 없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은 채 조용하게 창 밖을 내다보거나, 혹은 인사를 하러 오는 손님을 맞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알기에 오키야의 대장 격인 - 카카에누시는 항상 자신의 할 말만을 늘어놓고는 했다. 답이 필요할 때는 빈 종이를 하나 두고 나갔다. 다시 돌아올 때쯤에는 그 종이에 답이 적혀 있었다. 적어도 오이란은 누군가가 보는 앞에서는 그 눈을 뜨거나 움직이는 일이 없었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것처럼.
"오이란."
대답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카카에누시가 다시 불렀다. 오이란은 여전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도 따라서 창 밖으로 옮겨갔다. 기화루, 그들의 누각은 언제나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주변은 그들이 내뿜는 희미한 빛 외에는 온통 캄캄하고 질척한 잿빛 안개뿐, 생명체도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다가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릴 때쯤이면, 모두가 그냥 지나가고는 했다. 가엾은 어떤 요괴가 길을 잃고 미친 모양이라고. 그들이라고 중간땅에서 헤매는 요괴를 누각으로 데려올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떠한 요괴들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어둠 속에서 울고 헤매고 온 몸을 쥐어뜯다가, 이내 피를 토하고 어둠 속에서 백골이 되어 사라졌다.
그들은 그런 존재였다.
요괴는 그들의 동족이자 동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과 정을 통하고 누구에게도 끼지 못하는 죽은 존재들을 낳았다. 아주 더러, 요괴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살아있었고 그들은 반요라고 불리웠다. 인간계에도, 요계에도 가지 못하는 반요들은 그들이 어느 세상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입증하듯이 저주받은 중간땅을 어릴 때부터 드나들 수 있었다. 끝없는 안개의 잿빛 땅에서, 인간도 요괴도 미쳐버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불모의 땅에서도 오로지 그들 반요만은 살아갈 수 있었다. 낳은 아비에게 버림받고, 기른 어미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며 도망친 반요들은 하나둘씩 중간땅으로 모여들었다.
그 곳에서 그들을 거둔 것이 500년 전의 지금의 오이란이었다. 정처없이 헤매던 이들은 잿빛 땅의 유일한 불빛을 발견하고 홀린듯이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온천이 솟아나는 작은 기루에는 오이란이 몇몇 반요들과 앉아 어린 동족들을 맞이해주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며 반요들은 점점 더 누각으로 모여들었고 누각은 점점 더 커지고 처마를 올리고, 어느 새인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기생들과 그들을 보살피는 무사들이 공존하는 반요들의 밤의 등불이 되었다.
중간땅의 기루, 기화루는 그렇게 태어났다.
언제나 어울리며 서로 돕고 동족을 위하며 살아가던 그들은, 1년에 단 한 번 딱 사흘간 중간땅이 열리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이 뜨는 날. 일 년 중 단 한 때, 가장 큰 달이 뜨는 사흘, 달이 이지러지지 앟고 보름달이 비추는 그 시간에는 요계와 인간계로 통하는 중간땅이 다리가 되어 안개에서 들어올려져 그 모습을 요괴들에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인간계로 향하던, 혹은 요계로 돌아가던 요괴들은 안개의 땅에 우뚝 솟은 기루를 보고 홀린듯이 그 곳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질적인 아름다운 존재들에게 매혹되었고, 사흘간을 그 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명도의 축제는 그렇게 시작되어, 300년이 흘렀다.
"...200년만의 붉은 달이야."
붉은 달의 전설을 당신이 기억하지 못할 리 없어. 카카에누시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 150년을 조금 채운 카카에누시는 붉은 달을 본 적이 없었다. 대개의 반요들은 100여살에서 120살이 되면 죽고는 했다. 인간들이 짧으면 60, 길어도 80에서 죽는걸 치면 조금 더 오래 산다고 볼 수 있었지만, 정말 그 정도였다. 조금 더 오래 사는 수명과, 조금 더 강한 힘과 함께 지나치게 이질적인 외모를 가지고 반요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카카에누시는 붉은 달의 전설을 지겹게 들어 알고 있었다. 어린 그에게, 다음 대의 카카에누시를 이어가야 한다며 전대 카카에누시가 말하고 또 말하고는 했던 그 전설을.
"전대 할아범은 당신이 200년 전에 어떻게 했는지 얘기해주지 않았어."
다만 그 결과만을 이야기 해줬지. 카카에누시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보름달은 그들의 요력을 강하게 해준다. 그리고 붉은 달은 더더욱. 어깨까지 잘라냈던 머리가 어느 새 길어 허리께에서 찰랑이고 있었다. 오이란의 눈은 여전히 뜨이지 않았고,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바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할아범과 당신은 그걸 겪은 존재들이니까."
나도 죽는 게 두려워. 그가 속삭였다. 이미 수명은 넘은 지 오래였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은 요력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죽음은, 항상 보아온 죽음은 반요들에게는 숙명이면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부디 이번 축제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게 도와줘."
카카에누시는 조용히 미닫이 문을 닫았다. 가장 높은 오이란의 방, 그 복도에서 보이는 하늘은 잿빛의 침침함을 띠고 있었지만 어딘가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불안해. 무언가 불안해. 카카에누시는 고개를 흔들고는 제 뺨을 한 번 때렸다. 자신이 아이들을 통솔하지 않으면 기루 전체가 흐트러진다. 이제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머리칼을 잡아 단칼에 잘라낸 그가 계단에 한 번 발을 구르며 소리를 쳤다.
"자, 일어나! 명도 축제가 곧 앞이다! 일어나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해!"